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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 자연 휴양림,수목원 입니다.



'안면도 자연휴양림
안면도에는 국내 유일의 수령 100년 내외의 안면 소나무 천연림이 381ha에 걸쳐 울창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안면송은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궁궐용 목재와 배를 만드는데 사용되었으며 국가에서 특별 관리하였습니다.

안면도자연휴양림에는 산림전시관 등 교육시설과 편익시설, 위생• 체육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안면도 수목원
안면도자연휴양림 맞은편에 조성된 안면도수목원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총면적 42ha의 수목원에는 1,800여 종의 아름다운 수목이 자라고 있으며 한국전통정원을 비롯해 교육적 활용도가 뛰어난 생태습지원, 지피원, 식용수원 등 테마원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숲속의 나무는 자신의 몸을 키우기 위해 광합성을 합니다. 공기 중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가지고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식물의 영양분인 포도당과 탄수화물을 합성하고 동시에 산소를 배출합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머금은 물을 서서히 토양에 공급하여 가뭄을 완화하기도 합니다. 또한 오염된 빗물은 공극이 잘 발달된 숲 속의 토양을 통과하는 동안 깨끗하게 정화됩니다.

우리나라의 숲 1ha는 연간 이산화탄소 7톤을 흡수하고 산소 5톤을 생산합니다. 숲 1ha에서 자동차 1대가 내뿜는 온실가스를 흡수하고 20명이 숨 수 있는 산소를 공급하는 셈입니다.

숲은 물과 공기를 정화하고 동물을 보호하며. 사람들에게 휴양과 치유의 선물을 선사합니다. 숲이 1년 동안 베푸는 혜택은 166조원(국민 1인당 약 310만원/2016년 기준)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소나무와 관련된 기록이 700여회 나온다. 그중 궁궐과 왕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유독 많다. 1800년대 초에 제작된 「동궐도에도 창덕궁과 창경궁 곳곳에 소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조선 왕조는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절개와 충절을 보여준다 하여 소나무를 왕실의 상징으로 활용 하였다.

임진왜란은 조선 병선(거북선,판옥선)과 일본 병선(안택선)의 싸움이었다. 그것은 곧 조선 병선을 만든 소나무와 일본 병선을 만든 삼나무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조선 병선은 단단한 소나무로 만들었고, 일본 병선은 상대적으로 무른 삼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병선은 거북선 3척과 판옥선 120여 척 뿐이었지만 왜선은 600여 적에 달했다. 거북선을 앞세워 조선군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조선 병선의 재료인 소나무의 위력 덕분이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수원화성 건설73~196에 원목 9천 680주, 판재 2천 300립, 서까래용 원목 1만4천212주가 사용되었으며 목재는 안면도, 장산곶, 강원도 관동, 전라좌 우수영에서 조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들 목재 중에서 기동이나 대들보로 사용된 대부등 344주는 모두 안면송 이었다.

2013년 복원된 숭례문에도 안면송이 사용되었다. 안면읍 중장리의 송능권 씨가 숭례문 복원에 사용해 달라며 원목 상태로 보관 중이던 안면송 425그루를 문화재청에 기증했고 기증된 소나무는 숭례문의 서까래와 기둥, 지붕 등에 두루 사용되었다.

충청남도는 1978년 휴양림 일대 115ha(4만3200본) 소나무 유전자인보호림으로 고시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국립산림과학원은 230ha를 소나무 우량종자 생산을 위한 채종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또한 2005년에는 FAO(세계식량농업기구) 아시아 • 태평양 산림위원회가 안면도 소나무 숲을 우수 산립 경영 사례로 선정해, 안면송의 경관 • 휴양적 기능, 산림생태 및 생물다양성 보전. 그리고 지역 발전 기여도를 높이 평가하였다.

"농사부터 길쌈까지 일상생활을 벗하다"
봄이 되면 들에 나가 쟁기질• 가래질로 땅을 갈아엎고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하였다. 여름에는 호미 같은 작은 농기구로 밭의 잡풀을 뽑았고 용두레와 살포를 이용하여 논에 물을 대었다.

가을이 되면 농작물을 추수하여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지었다. 도리깨• 홀태 등으로 타작을 하였고 넉가래 • 고무래로 타작한 곡식을 갈무리하였다. 곡식은 매통 절구• 방아 등을 이용해 갈거나 빻아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하였다.

추위가 오기 전에 창호를 바르고 초가 지붕에 이엉을 올려 겨울을 대비하였다. 사람들은 지게 절구•절구공이•쟁기•풍구• 가래•멍에• 가마니틀 • 자리틀 • 물레 풀무• 방아 등 다양한 농기구와 함께 한 해 24절기를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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